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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훈련 37

             서른 일곱 번째 페이지  텍스트  이처럼 건물 정면에 기둥이 대표적으로 보이고 그 위 삼각형이 보이는 스타일 건물, 즉 파르테논 신전으로부터 파생된 건물을 소위 신고전주의 건축이라 보면 됩니다. 이런 스타일의 건물은 19세기 초반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유행하던 양식 중 하나였습니다. 이 건물의 특징 중 하나라 볼 수 있는 돔은 이중으로 되어 있어서 내부는 돌로 그리고 밖은 쇠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돌처럼 보이도록 돌 색을 칠했습니다. 현재의 돔은 지름 29미터 높이는 88미터이고 4000톤의 주철로 만들어 1866년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회의 기간 중에는 각각 깃발을 게양하고 밤에는 돔 위에 조명을 해서 국회의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립니다. 돔 꼭대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꼭대기에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그 제목이 ‘자유(Freedom)’입니다. 토마스 크로폴드(Thomas Crawford)라는 사람이 디자인했는데 특이한 것은 이 자유라는 이름의 동상이 칼을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Freedom is not free.’라는 문장을 생각해 볼 기회입니다. 자유는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이 건물은 국회의사당 빌딩이라는 이름보다는 ‘카피톨(Capitol)’이라 불립니다. 이 이름은 특히 토마스 제퍼슨이 강조했습니다. 아마도 열렬한 공화정 지지자였던 토마스 제퍼슨이 로마의 7개 언덕 중 가장 신성하게 여겨졌던 카피톨리누스 언덕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름이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로툰다(Rotunda)’에서의 유해 일반 공개를 설명하고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로툰다는 흔히 돔이 있는 지붕에서 돔 밑의 바닥을 지칭하는 명칭입니다. 이 미국 국회의사당 돔 로툰다에서는 주로 대통령이지만 그 외에도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의 유해를 일반에게 전시하고 공개하는 행사를 가집니다. 이는 미국 연방정부가 행하는 최고의 예를 갖춘 의전행사라고 합니다. 2

한국어 훈련 36

            서른 여섯 번째 페이지  텍스트  미국의 의회는 우선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라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1774년과 1775년 두 번에 걸쳐 나중에 미국의 두 번째 수도가 되는 펜실베이니아 주(Pennsylvania)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열렸었고 첫 번째 회의는 영국이 부과하는 온갖 세금에 대해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를 논의했고 두 번째 회의는 1775년 4월 19일 렉싱턴 콩코드(Lexington Concord) 전투로 이미 전쟁이 시작된 상태에서 열렸습니다. 물론 회의는 한 번 열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기간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후 1781년부터 1789년 미국 의회가 결성되기까지 연합회의(Congress of the Confederation)라는 이름으로 계속됩니다. 회의는 필라델피아에서만 열렸던 것은 아닙니다.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다가 나중에 요크(York), 프린스턴(Princeton), 애너폴리스(Annapolis), 트렌톤(Trenton_ 등으로 옮겨 다니다가 이후 1789년 뉴욕으로 이동하면서 결국 미국 의회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현재 국회의사당 건물은 1793년(1776년 전쟁 시작, 1783년 전쟁 끝, 1789년 미국 대통령 시작, 1790년 필라델피아 시대 시작) 워싱턴이 초석을 놓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유럽에서 인부들을 부를 생각이었지만 여의치 않아 결국 노예들이나 해방된 흑인들이 일을 했습니다. 1800년에 완성이 되었고 이후에도 국가가 커지면서 지속적으로 확장이 됩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미영전쟁을 통해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이를 복구하기 전에 임시로 나무로 된 돔을 얹었다가 1865년이 되어서야 복구를 마치게 됩니다. 건물 스타일은 네오클래식(Neo Classic) 즉 신고전주의 양식이라고 얘기됩니다. “신”이 있으니 오리지널이 있겠죠. 서양문화에서 오리지널 즉 클래식이란 그리스 로마 시대를 말합니다. 특히 그리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리에 떠올리는

한국어 훈련 35

           서른 다섯 번째 페이지  텍스트  미국의 대통령 매디슨이 화가 납니다. 그리고 명령을 내리죠. 영국을 쳐라. 영국을 칩니다. 그런데 바다 건너 영국을 치기에는 너무 머니까 가까이에 있는 영국 즉 캐나다를 칩니다. 특히 토론토를 공격하게 되는 거죠. 영국은 깜짝 놀랐습니다. 전투 준비도 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공격을 받게 돼서 억지로 억지로 민병대가 구성되고 해서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 등지에서 치열한 전투를 거쳐 토론토를 사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영국군이 왔습니다. 그리고 미국군을 몰아냅니다. 이제 영국군이 미국을 공격합니다. 사실 이 전쟁은 토론토 주변에서만 벌어진 전쟁은 아니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곳곳에서 영국과 미국이 맞붙었던 전쟁이죠. 그중 한 곳이 바로 워싱턴 DC였습니다. 영국군이 강을 거슬러 쳐들어와 워싱턴 디시에 불을 내고 백악관 국회의사당 등을 모두 쑥밭으로 만들어 버리죠. 그러면서 워싱턴 DC는 폐허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제 여기는 더 이상 가망이 없으니까 이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매디슨에게 건의를 합니다. 하지만 매디슨은 용기를 내어 말하죠. 미국이 앞으로도 영원하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 자리에 다시 서야 한다. 그리고 원래 건축가를 불러서 백악관도 다시 짓고 국회의사당도 다시 짓고 그리고 도시를 재건합니다. 이 전쟁의 결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허망하게 끝납니다. 미국과 영국이 파리에서 만나서 그냥 손잡고 악수하고 없던 일로 합시다 오케이. 이러고 끝난 거죠. 그래서 확실하게 국경이 설정되어 있지 않던 몇몇 곳의 국경만 확실하게 하고 그냥 끝났습니다. 어쨌든 이 일을 거쳐 DC는 다시 만들어졌고 그 이후에 또 흑인 폭동 때문에 파괴되었다 다시 만들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실 미국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정돈되고 멋진 도시라 생각하면 됩니다. 실제로 DC의 건축물들은 다른 도시에 비해 훨씬 잘 만들어졌고 고급스럽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투어를 할 시점이네요. 국회의사당

한국어 훈련 34

                서른 네 번째 페이지  텍스트  그런데 이때 모두가 독립에 찬성했던 것은 아닙니다. 일부는, “우리는 영국 사람이다. 왜 나라를 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만드느냐? 세금과 대표가 문제라면 그 문제는 고치고 그대로 영국 사람으로 남아있자”라고 했죠. 이 사람들은 영국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지하지만 독립으로 가는 것은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독립할 때 수십만의 영국인들이 영국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영국은 멀죠. 그래서 가까이 있는 영국인 캐나다로 이주해 가죠. 어떻게 보면 독립을 주장하는 미국인들의 눈에 이 사람들은 배신자가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이들에 대한 인식이 사실 별로 좋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어쨌든 미국은 독립했고 유럽의 각 나라들과 자유로이 무역을 하며 홀로서기를 실현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쟤들이 분명 우리나라였었는데 우리를 배신하고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이제 다른 나라들과 무역을 해? 이러면서 정말 화가 나 있었죠. 그러는 와중에 나폴레옹이 강력한 정책을 내놓습니다. 이름하여 ‘대륙봉쇄령(Continental Blockade)’. 나폴레옹이 영국도 점령하고 싶었는데 그만 넬슨에게 패배하면서 물거품이 되죠. 그래서 애만 태우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게 너희 모두 영국과 아무런 교역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게 대륙봉쇄령이라는 거죠. 그리고 여기에 미국도 함께 합니다. 사실 매디슨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영국을 매우 싫어하기도 했답니다. 어쨌든 미국 배들은 영국을 무시하고 유럽의 다른 나라와만 교역을 했죠. 영국 입장에서는 정말 꼴 보기가 싫었던 거죠. 그래서 영국은 미국 배들을 못살게 굽니다. 미국배를 대상으로 해적질도 하고 침몰도 시킵니다.  첫 단락 패러프레이징 플러스  어느나라 역사나 그렇듯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손쉽게 처리되는 경우는 없어 보입니다. 물론 이건 역사에 한정된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일들이 쉽게 처리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독립이라는 것만 해도

한국어 훈련 33

               서른 세 번째 페이지  텍스트  어쨌든 흑인이 많은 이유는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즉 이 도시에는 수많은 관공서 호텔 법원 국회의사당 사무실 대사관 등등 수많은 건물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항상 최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건물들이죠. 이 건물들 청소를 비롯한 유지 보수를 누가 할까요? 이런 일들은 대부분 흑인들의 몫입니다. 그런데 흑인들은 시에서 멀리 떨어져 살 수 없습니다.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은 주로 시 외곽 변두리 대중교통이 있는 곳에 삽니다. 이런 이유로 흑인들이 많아진 것이겠죠. 이 도시는 수도로 건설된 이후 1888년 최초로 전차가 다니기 시작했고 도시가 확대되었지만 제대로 도시가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900년대 초가 되면서 ‘City Beautiful Movement’라는 도시 재탄생 계획을 실행하면서 도시를 고급화시키게 됩니다. 특히 경제 대공황기에 뉴딜 정책을 통해 많은 정부 건물이며 추념비 박물관 등을 세우면서 도시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에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1968년 4월 4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멤피스에서 암살되면서 수많은 흑인이 이곳으로 몰려와 폭동을 일으키고 파괴를 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14,000명이나 되는 병력이 투입되어 제지했지만 파괴가 심해서 그걸 모두 복구하는 것은 1990년대 말까지 가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아무 일 없었느냐? 그건 또 아닙니다. 그 이전에 이미 이곳이 완전히 파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사건만 설명하고 본격적인 관광지로 넘어가겠습니다. 18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혹시 미국과 영국이 혹은 미국과 캐나다가 전쟁을 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바로 1812년에 미국과 영국 혹은 캐나다가 전쟁을 한 사건입니다. 이름하여 ‘미영 전쟁’ 혹은 ‘영미 전쟁’입니다. 이 사건은 1809년부터 17년까지 미국의 4번째 대통령을 역임한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

한국어 훈련 32

              서른 두 번째 페이지  텍스트  어쨌든 도시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애초 샤를르가 계획한 것처럼 만들어졌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내셔널 몰(National Mall)입니다. ― 몰이란 산책로란 뜻입니다. 이 길은 국회의사당 후면으로 1.6km 뻗어 있으며 너비가 120미터고 양쪽으로 스미소니언(Smithonian) 박물관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길의 별명은 샹젤리제(Champs~Elysées)입니다. 맞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그 유명한 길. 뜻은 천당 극락 이렇습니다. DC는 일단 특별한 도시입니다. 왜냐하면 시민의 거의 절반이 흑인이기 때문이죠. 미국에 흑인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시에서 흑인은 소수입니다. 대략 2만 개 도시 중 30개 정도에서 흑인이 과반수가 넘습니다. 큰 도시 몇 개를 예로 들면 볼티모어(Baltimore) 64.3%, 디트로이트(Detroit) 82.7%, 뉴어크(Newark) 53.5% 등이 흑인이 많은 도시입니다. DC에는 2016년 대략 7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살면서 DC에서 일하거나 DC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대략 6백만 명 정도가 수도권을 이룬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흑인은 48.3%, 백인 44.1% 그리고 아시안이 4.2%입니다. 2010년 통계로 전체 17%가 18세 이하이며(미국 평균은 24%) 평균 나이는 34세로 미국에서 가장 적습니다. 이 도시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절반이 대학 졸업 이상입니다. 하지만 전체 인구의 1/3이 기능적으로 문맹, 즉 글자는 알지만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읽더라도 이해를 못 합니다. 둘째 평균 개인 소득은 56,000불로 미국 최고지만, 반대로 19%가 가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미시시피를 제외하고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아마도 흑인이 많다는 것이 이런 대조를 낳았을 것입니다. 사실 흑인 문제는 해결이 매우 어려운 문제일 것입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한국어 훈련 31

             서른 한 번째 페이지  텍스트  1788년 나중 미국의 4번째 대통령이 되는 제임스 메디슨(James Madison)이 수도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그러면서 수도는 어떤 주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토론을 하게 됩니다. 어디에 수도를 정할지. 모든 주들이 다 우리 동네에 수도를 만들라고 했겠죠. 그러다 1790년에 소위 1790년 절충(Compromise of 1790)을 이루게 됩니다. 해밀턴과 제퍼슨과 메디슨이 모여 수도를 남쪽 지역에 만들고 대신 연방정부가 빚을 갚아라 이렇게 돼서 남부지역에 수도가 들어서는 것에 동의하고 결국 포토맥(Potomac) 강변에 수도를 만들고 그 구체적 위치는 조지 워싱턴이 정하기로 한다는 법을 만들게 됩니다. 수도가 정해진 후 워싱턴은 프랑스 건축가 피에르 샤를르 렁펑(Pierre Charles l’Enfant)에게 도시 계획을 맡깁니다. 그래서 이 DC는 미국 다른 도시들에 비해 약간 특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미국 도시의 길들은 주로 바둑판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 유럽의 도시들은 중간중간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DC를 설계한 건축가가 프랑스 사람이었고 특히 제퍼슨이 그에게 파리 암스테르담 밀라노 등 도시 디자인을 주면서 유럽 스타일의 도시를 요구했고 그러다 보니 길들이 방사형과 직선이 뒤엉켜 필요 이상 복잡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첫 단락 패러프레이징 플러스  미국의 첫 번째 대통령은 조지 워싱터, 두 번째는 존 애덤스, 세 번째는 토마스 제퍼슨 그리고 네 번째는 제임스 메디슨 입니다. 이 넷이 그 중에서도 특히 제퍼슨과 메디슨 그리고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 미국 초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던 사람 중 하나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미국 수도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애초 미국 최초의 수도는? 바로 뉴욕입니다. 뉴욕은 일종의 미국에서 상징과도 같은 곳이죠. 뉴욕과 뉴저지 사이에 있는 강을 따라 저 북쪽까지 갈 수